□원효사 연혁

 

원효사의 확실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습니다. 신라 지증, 법흥왕대(AD 500~539)라는 설이 있으나 불확실하며, 조선사찰사료원효사 중건기에 의하면, 원효성사(AD 617~686)가 산명수려한 서석산을 좋아하여 암자를 지었으므로 그 이름이 원효사가 되었다 합니다. 이상 사료들을 종합하여 원효사의 창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추정해 봅니다.

원효사는 신라 지증왕(재위 500514), 법흥왕(재위 514-540), 양대에 이름모를 조그만 암자로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훗날 원효성사가 이곳에서 머물면서 수행정진 하였고 성사의 덕을 추모하여 개창조로 모시고 원효암으로 개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대

내용

고려시대

화엄학의 대강당이었음.

조선시대

宣祖代(1568~1608)에 의승장이었던 騎虛堂 영규대사가 주석.

1597

정유재란시 화신(火燼).

1609

을유년에 증심사를 중창한 석경대사(釋經大師)가 복원.

1636

인조 14년에 신원대사(信元大師)가 중수.

1637

인조 15년에 옥견대사(玉堅大師)32불상을 조성봉안, 중수.

1639

중종 34년 사찰혁파시 동국여지승람 광산현조(光山縣條)에 원효사(元曉寺)가 기록.

1685

숙종11년 신옥(信玉), 정식대사(淨式大師)가 중수.

1789

정조 13년 회운대사(會雲大師)가 선방을 지음.

1802

순조 2년 회운대사(會雲大師)가 대웅전을 지음.

1831

순조 31년에 내원(乃圓) 의관대사(義寬大師)가 중수, 단청까지 마침.

1847

헌종 13년 내원대사가 칠성각을 신축.

1894

함명 태선(1824~1902)스님의 무진주 무등산원효암중수상량문에 의하면 학산대사가 관청에 호소해 100금의 재력을 시주받고 고을의 유지들의 도움으로 사찰을 중건.

1927

원담대사(圓潭大師)가 중수.

1930

이 지방 토호였던 지응현(池應鉉), 김정명월(金淨明月)등이 주가 되어 칠성각, 시왕전 등의 대중수.

1938

정응담(鄭應潭) 대사(大師)가 중수.

1944

주지 김동성(金東成) 대사(大師), 일학대사(一鶴大師), 지응현(池應鉉) 거사, 김정명월(金淨明月) 보살 등이 중심이 되어 석가탑, 관음탑을 만들고 사우들을 보수.

1950

6.25 전화(戰火)로 전소(全燒).

1954~

1960

주지 김인곡(金麟谷)과 총무 김금파사(金錦波師), 지응현(池應鉉) 거사, 김명정월(金淨明月) 보살, 옥천 지창선(池昌宣) 거사 등이 대시주가 되어 사우 일부를 옛 규모보다 축소하여 복구함.

1974

정지우사(鄭智牛師)가 주지로 취임하여 소유권 문제로 3년간의 재판 끝에 정화를 매듭짓고 복원불사계획을 수립하여 일부 착수하였으며, 축대를 쌓고 헌 건물을 철거함.

1980

법타(法陀)스님이 대웅전 요사채 명부전을 신축복원하고, 칠성각을 보수하였다. 또한 무등산 도립공원 원효사 주차장을 만들어 장래의 원효사 수입원을 확보함.

1992

현지(玄旨)스님에 의해 성산각, 개산조당, 요사, 종각, 누각 등의 건물을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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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사 연혁  (0) 2017.04.06
Posted by 무등산 원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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